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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현 "시인이 운전면허 같은 자격증은 아니잖아요"[신재우의 작가만세]

계미현

최근 국내 최초 웹시집 '현 가의 몰락' 공개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계미현 시인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2.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계미현은 스스로 '시인'이 됐다. 신춘문예나 문학상이라는 제도를 거쳐 등단하는 통상의 시인들과 달리 그는 최근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웹 시집 '현 가의 몰락'을 발표하고 '시인'이라는 호칭을 직접 쟁취했다.

"시인이 운전면허 같은 자격증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기존 시스템과 다르게 첫발을 뗀 신인은 모든 과정을 직접 해내야 했다. 시집 제작을 위해 디자인부터 코딩까지 동료들을 모아 진행했고 자신의 시집을 알리기 위해 직접 언론사에 홍보 이메일을 보냈다. 말 그대로 "신인 중의 신인"으로서의 행보다.

계 시인은 애초부터 등단 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시를 통해 경쟁하고 소수만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이 독특한 시스템에 동의할 수 없었다. "경쟁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는 그는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등단을 '보이콧'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써왔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타협이거든요."

시인이자 동물권 운동 활동가이기도 한 그에게 등단에 대한 저항은 어색하지 않다. 자신의 목표가 "데모를 열심히 하는 작가"라고 말하는 그에게 지금의 행보는 새로운 동시에 자연스럽다. 최근 웹시집' 현 가의 몰락'을 공개한 계미현 시인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만났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계미현 시인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02.17. [email protected]


웹시집 구상에 앞서 시도한 출판사 투고, "미등단 시인에겐 어려웠다"
웹시집을 출간하기까지 좌절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시를 공개하기에 앞서 그는 45편의 시를 한권의 시집으로 묶어 출판사에 투고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출간 제안은 오지 않았다.

"미등단 시인이 기성 출판사에 접근하는 건 어려웠어요."

한 차례 위기를 맞았던 그의 시집은 공민 번역가와 함께 지금의 형태로 완성됐다. "웹진에도 시와 소설이 다 올라오는데 시집을 웹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총 10편의 시가 번역과 함께 공개됐다.

새로운 시도로 얻은 것도 많다. '국내 최초'의 웹시집이라는 타이틀을 가졌고, 그의 시 '출근길'이 웹사이트에서 감상하기에 더욱 적절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번역과 함께 볼 수 있는 형태는 종이책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서울=뉴시스] 웹시집 '현 가의 몰락' 중 일부 (사진 =웹사이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계미현은 웹시집 출간 과정에 대해 "왜 아직까지 아무도 안했지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고 표현한다. 동료인 태희 디자이너가 목탄으로 그린 개미 그림을 이미지로 변환해 사이트에 옮기고 코딩을 통해 텍스트로 된 자신의 시를 웹사이트로 옮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종이책을 만드는 과정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꼈다.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니까 힘이 났던 거죠. 사실 종이책도 마찬가지잖아요.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부 기장님까지 책이 나오는 건 원래 협업이니까요."

계미현의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단순히 웹시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지 않은 시들과 몇 편의 시를 추가해 새로운 시집으로 출판사의 문을 다시 두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계미현 시인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02.17. [email protected]


"시를 통한 즐거움, 어떤 보람과 쾌락으로도 충족되지 않아"
지금의 제도는 거부했지만 계미현은 단 한 순간도 시를 거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 창작을 시작한 그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계속해서 시를 써왔다. "다른 글을 써도 결국 시가 돼버린다"는 그에게 시는 하나의 유희다. 잡지사에서 편집자 생활을 하고 동물권 운동을 펼쳤지만 시는 이와 무관하게 그에게 유희의 영역으로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를 쓰고 점심을 먹은 뒤에 산책을 가요. 마음에 드는 시를 쓴 날 산책 할때의 기분은… 다른 어떤 보람이나 쾌락으로도 충족이 안 될 것 같아요."

이번 시집은 형태 뿐 아니라 내용도 특별하다. '개미'를 주제로 한 세계관을 구축해 이를 바탕으로 모든 시를 완성했다. 시에 등장하는 개미는 대상화를 피하고자 '은주', '미정', '예원' 등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총 49개의 이름을 가진 개미들은 각자의 사연과 삶을 가지고 시 속에서 등장한다.

해외 출간을 염두에 두고 시를 영어로 번역하고 공개한 계미현은 곧 미국의 문예지 '뉴 잉글랜드 리뷰'(NER)에 미국에 자신의 시를 선보인다. 오는 28일에는 공민 번역가, 태희 디자이너 등과 함께 북토크에 나선다. 시인 계미현이 웃으며 말했다.

"흠… 제 계획대로 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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